진화하는 물
책제목: 진화하는 물
원제: Cells, Gels and the Engines of Life
지은이: 제럴드 폴락 (Gerald H. Pollack)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21세기를 맞은 지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껏 물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인미답 상태다. 그렇지만 물은 도처에 있다. 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질문해 보자. 물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책은 생물학에서 물이 차지하는 역할에 관한 책이다. 세포 안의 70%를 물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 무게 비율일 것이다. 정통 생물학은 물을 언급하지 않는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물의 물리화학적 성질 몇 가지를 말한다. 물을 피하기 위해 이중 지질막이 생겨난 것이라고 기술하는 것이 굳이 생물학과 관련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물과 접하고 있는 쪽으로 친수성 있는 부분이 배치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세포막 구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 두자. 세포 안은 어떤가? 세포 안에 존재하는 70%의 물은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그것이 세포의 기능에 어떤 식의 기여를 하는 것일까? 암세포에서 물의 행동 방식은 달라져 있을까? 이런 식의 질문은 끝이 없지만 사실 답을 기대하고서 하는 물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생물학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폴락의 질문은 평이하다. 왜 젖은 모래에는 발이 빠지지 않을까? 운동장의 장축보다 더 높이 자라는 아메리카 삼나무 꼭대기까지 물은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혹시 우리 세포는 겔과 같은 것이 아닐까? 물은 단백질에 붙들려 있어서 흘러가는 강물과 다른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폴락은 물의 입장에서 세포막에 박혀 있는 채널과 펌프의 기능을 새롭게 해석한다. 세포를 푸딩 같은 겔처럼 생각하면 세포 내용물의 분비 혹은 운반과 같은 기본적인 세포 과정은 어떻게 해석될까? 또 세포 분열과 근육의 운동은 어떤가? 폴락은 이때 상전이(Phase Transition)라는 개념을 동원한다. 겔 속의 물이 단백질 구조 변화에 발맞춰 들락날락하면서 복잡한 생물학적 기제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제럴드 폴락(Gerald H. Pollack)
-- 이상 출판사 소개 글에서 전재
----------------------------------------------------------
<책 속의 글들>
세포가 생명체의 기본 구조이자 활동 단위라는 세포이론이 정립된 것은 1839년 Jakob Schleiden과 Theodor Schwann 에 의해서였다. 당시에는 현미경의 분해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세포가 얇은 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막이 세포의 안과 밖을 경계 짓는다고 보았다. 막 안에 있는 각종 세포소기관들과 영양성분들이 마치 물에 둥둥 떠 있듯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세포막은 약 10 나노미터 두께의 아주 얇은 인지질 이중층으로 되어 있고 막의 여기저기에는 영양분과 노폐물을 세포 내, 외부로 수송하기 위한 통로 및 펌프 역할을 하는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 분자가 박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저자의 논지 기저에는 “자연은 단순 명료하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그 이론의 핵심은 세포 안에 있는 물이다. 실제로 세포질을 분석하면 물이 80%, 그리고 나머지 단백질이 20%를 차지한다. 질량이 아니라 분자 개수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99%가 물 분자이고 나머지가 각종 단백질 등의 분자이다.....세포질을 구성하는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세포 내의 단백질과 물이 전기적으로 결합하면서 구조화되어 있는 물이다. 더 나아가서 근육의 작동, 세포의 움직임도 이러한 결합 상태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相轉移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세포막 안을 포괄하는 세포질이 겔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책의 근간을 이룬다. 교과서는 여전히 세포질이 수용액처럼 행동한다고 기술한다. 겔은 확실히 수용액과는 다르다. 겔은 어떤 물질의 重合體가 물과 이온을 붙들고 있는 일종의 鑄型(matrix)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젤라틴 푸딩은 물을 잔뜩 머금을 수 있고 깨진 계란은 끈적끈적한 것이다. 겔과 비슷한 세포질이라는 개념은 매우 강한 파급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 개념은 세포의 내부와 외부에 이온들이 어떤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세포의 전기적 행동을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 활동 電位는 겔에서와 마찬가지로 막이 없는 세포에서도 측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세포질이 겔과 비슷한 속성을 지녔다는 개념은 세포의 생체 물리학적 특성을 규정할 수 있다.....상전이가 세포의 기능을 설명하는 주요 변수이다. 세포의 기능은 물질 운반, 세포 이동, 세포 분열, 분비 작용, 세포 간 신호 전달, 수축 등 세포의 생존에 필수적인 활동이다. 상전이 현상이 세포의 생물학적 기능을 규정하는 단일하고 통합적인 기반을 이룬다는 바로 그 단순성이다.....세포가 어떤 방식으로 그 기능을 수행하는가에 대한 참신한 견해....그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조심스럽게 이 책에서 제시한다.
질문이 충분히 논리적이라면 자연은 그에 합당한 답을 내놓는다는 전제에서 과학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뭔가 질문이 잘못된 것이다.
-일베르트 센트죄르지, <살아 있다는 것:암세포를 관찰하고>, 1972
배양기에서 배양한 상피세포를 날카로운 미세 피펫으로 자르면, 핵이 없는 부위는 1~2일을 산다. 그러나 핵이 있는 부위는 계속 생존하다가 세포 분열을 거쳐 딸세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세포는 토마토처럼 잘려도 살아날 수 있다. 잘린 근육세포나 신경세포도 비슷하게 살아난다. 한쪽 끝이 손상된 세포가 앞으로 나가기도 한다. 앞으로 나아갈 때 세포의 파편을 뒤에 남기는 것은 예외라기보다는 보편적인 현상이다....이러한 세포의 파편은 8시간까지 살아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포유동물의 세포는 어느 정도는 손상된 상태로 살아간다. 끊임없는 물리적 마모를 견디는 피부 상피세포 혹은 소화기관의 혈관 내피세포 혹은 근육세포는 쉴 새 없이 부상에 시달린다. 평소 같으면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거대분자인 알부민이나 양고추냉이 과산화효소 혹은 덱스트란(분자량이 10,000돌틴) 같은 물질이 이들 세포에 편입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이들 세포는 외형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전혀 이상이 없다. 조직마다 상처를 입은 세포의 비율은 제각각이다. 심장의 근육세포는 약 20%에 이르지만 이소프로테레놀 자극을 주면 그 비율이 60%까지 올라간다. 그러니까 세포막의 손상은 기이한 것도 아니고 비밀스러울 것도 없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고 생리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조직의 병가지상사다.
정상적인 생리 조건에서 세포의 손상:
골격근 – 골격근육세포 – 5~30%
피부 – 상피세포 – 3~6%
소화기관 – 상피세포 - 0
심장근육 – 심근세포 – 20%
대동맥 – 혈관내피세포 – 6.5%
內耳 – 청각털세포 – 0
얼음 결정이 세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전자현미경 관찰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세포의 표면을 순식간에 얼리면 대부분의 단백질은 일반적인 결정 구조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시간을 늘리면 세포 내부에서도 얼음 결정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들 결정이 생기면 세포 골격 단백질이 망가지고 가끔은 알아볼 수도 없게 만든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세포 내부의(외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얼리면 안 된다. 강추위에 대한 자연스러운 방어는 세포가 어는 온도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다. 세포는 용질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물이 어는 온도인 0도보다 조금 낮은 온도에서 얼 수 있다....세포가 ‘염류의 총괄성 법칙’에 따라 끌어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온도는 많아야 2도 정도다. 따라서 대사과정을 늦춤으로써 약간의 열을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영하 15도에서 철쭉이 얼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러므로 영하 30도 정도인 극한의 추위에서는 식물이건 변온동물이건 살아남기 힘들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극지방에 사는 벌레, 예컨대 털복숭이 천막벌레는 영하 50도가 지속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간다. 여기에는 무언가가 있다....
화학자들에게 물이란, 엄청나게 복잡한 특성을 빚어내는 매우 간단한 구조를 가진 원소다. 생명과학자들에게 물이란 생명의 자궁처럼 형체가 오묘한 바다와 같다. 그러나...물은 쉽게 망각된다. 물은 그저 중성적인 성질을 지닌 물질의 운반자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거대분자와 물의 상호작용에 의존한다. 거대분자는 주변에 있는 물 분자를 조직화하고, 이 조직화된 물은 거대분자들을 보호하거나 격리 혹은 서로 연결한다....조직화된 물은 단백질의 荷電된 표면에서 기원한다. 물의 극성 때문에 이 단백질 표면에 물이 흡수되는 것이다. 한 층의 물이 부착되면 그 다음 여러 층의 물이 단계적으로 달라붙어 여러 층의 물이 망상 (network) 구조를 띌 수 있다. 또 조직화된 물은 이온을 녹이는 용매로서 썩 훌륭하지 않다....조직화된 물의 물리적 특성에 따라 특정한 이온의 세포 내 분포를 설명할 수 있다.
오랫동안 물은 액체이자 용매로 인식되어 왔다. 다른 용매에 비해 물은 크기가 작고 매우 높은 하전 상태를 지니기 때문에 범상치 않은 성질을 갖게 된다. 이 분자는 전기적으로 양으로 하전된 수소 두 개가 한편에 그리고 전기적으로 음성인 산소가 다른 편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정사면체의 4개의 팔에 4개의 하전이 위치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 모델은 물 분자의 방향성, 즉 공간적으로 편향성을 지닌 극성 결합을 할 수 있는 쌍극성(dipole)을 띤다.
물은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수증기, 액체, 그리고 고체이고 상태에 따라 제각각 수소 결합 양상이 다르다. 기체 상태인 경우 열에너지가 높고 물 분자는 쉼 없는 무작위 운동을 한다. 액체 상태에서는 이런 무작위성이 떨어지고 물 분자들은 서로 일시적인 (10의 –11제곱초마다 파트너를 바꾼다) 수소결합을 한다. 또 이들은 일시적으로 엉켜서 “명멸하는 다발 구조 (flickering cluster)”라는 연쇄구조를 이룰 수도 있다....이들 수소 결합은 매우 순간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물은 액체 상태로 남아 있다. 고체 혹은 얼음의 경우 하나의 물 분자는 4개의 물 분자와 연결된 독특한 배열을 취한다. 얼음은 다양한 종류의 결정 구조가 가능하지만, 평면 구조로 보면 각각의 수소 원자가 산소 원자를 가운데 두고 동일 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수소 결합의 이런 특성 때문에 얼음은 안정하고 고체를 이룬다. 또 이들 수소결합은 왜 얼음의 구조가 상대적으로 열려 있으며 밀도가 0.92인지 설명할 수 있다. 얼음은 물에 뜬다.
일반적인 액체와 얼음 결정 사이 어딘가에 소위 조직화된 물 혹은 층을 이룬 물이 존재한다. 이런 구조의 물은 계면(interface)에 주로 존재하기 때문에 界面水(interfacial water)라고도 부른다. 계면수는 일반적인 물의 세 형태와 확연히 구분된다....구조화된 물에서 분자들은 얼음만큼 정연하게는 아닐지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수소결합이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이들 조직화된 물의 밀도는 얼음보다 크고 분자들이 밀집한 상태로 존재하게 만든다. 이런 구부러진 결합은 구조에 융통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들 분자의 배열은 얼음보다 견고하지 않고 꼭 고정된 형태를 취할 필요도 없다. 계면의 표면이 親水性이냐 疏水性이냐에 따라 계면수는 최소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소수성 표면은 이웃한 물 분자 사이의 결합을 촉진한다. 이들 결합은 5옹스트롬 크기의 오각형 구조를 취하고 새장 비슷한 망상 구조로 자라나 소위 抱接(clathrate) 형태를 띤다. 이렇게 유도된 결합은 어떻게 소수성 표면이 물에 잘 녹지 않는지 설명해 준다....소수성 표면에 위치한 물 분자들이 광범위하게 스스로 결합해 이들이 소수성 분자의 용해 과정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전된 극성의 친수성 표면은 역시 쌍극자인 물 분자와 강하게 결합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물 분자끼리의 연합이 파괴된다. 이들 상호작용은 표면 위로 물 층이 형성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친수성 표면은 물 분자의 계층화를 유도하는 반면 소수성 표면은 물 분자의 포접 구조를 유도한다. 세포는 다양한 표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형태의 물 구조가 다 가능하다. 또 포접형, 또는 층을 이룬 물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물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세포질에는 단백질이라는 한 종류의 거대 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단백질은 소수성 및 친수성 요소를 다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수성 요소는 단백질의 중심에 묻혀 있어서 친수성 표면을 노출시키고 그것이 물 분자들과 마주한다. 그들은 많은 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 표면은 물의 계층적 조직화를 이끈다. 이들 물 분자의 구조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면 이들이 잘 얼지 않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은 구속되어 있어서 쉽사리 얼음 결정 구조로 재배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물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하는 능력은 단백질 표면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표면이 하전된 부위로 가득 차고 이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면 될수록 물의 조직화는 잘 이루어진다.
키스 포터 박사의 선도적인 연구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세포질이 상대적으로 밀집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포터는 세포 내부가 망상형 섬유주(intratrabecular)라는 미세한 선형 단백질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였다.....이런 골격은 세포질에 전면적으로 퍼져 있고 매우 조밀하게 채워진 세포의 표면을 구성한다. 망상형 섬유주 단백질 내부에 반 이상의 물이 조직화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약 5나노미터 간격을 두고 분포한다.
세포 내부의 표면과 표면 사이의 간격은 5~6개의 물 층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간격이 좁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거대분자들이 구조를 구축하도록 고안되었으며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이 다층 구조를 띠고 있음도 당연한 사실인 것 같다.
세포 내부의 물은 왕성하게 분열하고 있는 동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 조직화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화 정도가 감소하는 것은 구조화를 지시하는 크로마틴 단백질의 감소와 상관관계가 있었다....물은 쌍극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전기장 내에서 정렬하는 경향이 있다. 전기장의 방향이 바뀌면 물 분자는 마치 연병장에서 분열 행진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뒤로 돌린다. 주어진 전기장의 주파수가 그리 크지 않으면 분자들은 계속해서 공중제비 뛰듯 움직인다. 그러나 주파수가 일정 한계를 넘어서면 이제 분자는 그에 맞추어 더 이상 반응하지 못한다. 효과적인 쌍극성이 줄어들면서 ‘유전상수’가 낮아진다. 일반적인 물의 임계 주파수는 약 20기가헤르츠다. 물이 조직화되어 있으면 전기장에서 공중제비 뛰는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임계 주파수도 낮아진다.
물은 보편적인 용매이다. 물이 광범위한 용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쌍극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용질의 하전 주변으로 쌍극자가 몰려들어 반응 물질을 안정시키고 그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도록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반대 극성을 지닌 나트륨과 염소 이온이 엉기지 않고 용액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표준 자유 에너지 차이는 두 용어로 구성된다. 엔탈피(에너지:enthalpy. 열역학 제1법칙)와 엔트로피(entropy. 열역학 제2법칙)가 그것이다. 에너지 용어는 용질 분자의 부피와 관계가 있다. 일반적인 물에서 구조화된 물로 움직이기 위해 용질은 일반적인 물에 남겨진 구멍을 채우고 또 조직화된 물의 틈새에 굴을 파고 들어가 새로운 구멍을 만들 필요가 있다. 조직화된 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큰 구멍을 내는 것이 작은 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 따라서 큰 용질을 녹이는 것이 작은 용질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세포 내부에서 물은 단백질 표면에 흡수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머물러 있다고 추측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왜 세포가 잘 마르지 않고 세포의 부피를 예측할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비슷하게 겔에도 물이 머물러 있을 수 있는 힘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젤로는 쉽사리 와해되거나 마르지 않는다. 여기에는 5%의 콜라겐과 95%의 물이 있다. 다른 수용성 겔은 물을 99.9%까지 보유할 수도 있다.....또한 물의 조직화는 그것이 결빙에 내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내성은 겔의 특성을 갖는 세포의 속성이기도 하다....따라서 겔과 세포는 많은 측면에서 유사하다. 물의 조직화, 결빙에 대한 내성, 용질의 배제, 그리고 물리적인 일관성 등이 그것이다. 중합체-겔 과학이 세포생물학에 기여한 바가 크다.
열역학 법칙은 용질이 세포에서 배제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으며 그 정도는 주로 용질의 부피에 의존한다. 이런 예상은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동일한 현상이 겔에서도 확인되었다. 겔은 세포와 물리화학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하전과 전기 전위 같은 세포의 특성이 세포질의 보편적 특성에서 유래한다면 세포막을 손상시켰다고 해서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없다. 인간이 피부의 상처를 안고 살 수 있듯이 세포는 그 막이 손상되어도 생존할 수 있다.
세포는 건들거리거나 게으르지 않다. 그들은 수행해야 할 업무가 있다. 끊임없이 물질을 만들어야 하고 이들을 적재적소로 운반해야 한다. 또 그들은 자극에 반응해야 한다. 가끔씩 그들은 둘로 나뉘기도(분열) 한다. 어떤 종류의 세포는 움직이고, 신호를 주고, 분비하고 수축한다. 끝이 없다.
우리의 관심은 세포질이 중합체 겔과 유사성이 있는가 하는 데 있다. 물리화학적 속성들, 즉 서로 복잡하게 중합체와 함께 조직화된 물은 용질을 밀어내고 측정 가능한 전기적 활동 전위를 갖는다. 이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뭔가 겔과 같은 ‘느낌’을 준다.
相轉移는 중합체 겔이 작동하는 방식의 핵심이다.
화학적 자극에 민감한 겔의 좋은 예는 소위 말하는 겔-판막(gel-valve)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제약 산업에서 약물의 방출을 위해 고안한 장치다. 보통 이 판막은 약을 포함하는 캡슐을 둘러싼다. 겔은 농도가 매우 높아서 약물이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나 겔이 구조적 변화를 일으켜서 그들의 ‘구멍을 열어젖힌’ 상태가 되면 약물이 나갈 수 있다. 이런 열림 장치는 교묘하게 고안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삼킨 약물은 그들의 목적 부위인 소장에 도달하기 전에 위산의 공격을 받는다. 더 알칼리성인 환경에서만 열리도록 고안된 소장의 판막을 이용하면 이 약물은 위산의 공격을 비껴갈 수 있다. 현명한 기계가 약물의 효과적인 방출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기제는 pH에 민감하게 상전이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특별한 화학물질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약물이 방출되도록 조절할 수도 있다. 좋은 예는 포도당에 반응해 인슐린이 방출되도록 한 장치다.....
물질의 방출과는 달리 상전이는 물질을 회수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는 회수하고자 하는 용질이 들어 있는 수용액에 움츠러든 폴리아크릴아미드 겔을 담가 놓는다. pH에 민감한 상전이를 이용해서 겔은 자기 무게의 20배에 달하는 용액을 삼킬 수 있다. 크기에 기초한 용질의 분리에 의거해 일정 크기 이상의 용질은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용액 속에 그대로 남고 상대적으로 고농도로 농축되기 때문에 이들을 회수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예컨대 이런 과정은 발효조에서 항체만을 선택적으로 분리하고자 할 때 매우 효과적이다. 위에서 든 예들은 용질이 전이된 겔을 향해 가거나 멀어져 가는 것이다. 용질의 이동 혹은 운반은 세포 기능의 기본적 속성이다. 상전이를 수반하여 세포는 물질을 운반할 수 있다.
상전이는 인공 단백질 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겔을 만드는 중합체는 알파 나선과 베타-병풍 구조 혹은 다른 일반적인 아미노산 서열을 가진 단백질이다. 이런 겔은 특히 약물을 전달하는 데 응용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半자연적인 겔은 유용한 기능을 갖고 있다. 엘라스틴 혹은 콜라겐 유사 겔은 상전이를 하면서 물리적인 힘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인공 근육과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엘라스틴 겔의 또 다른 응용은 초강력 흡수제 혹은 인공 조직의 골격이다. 단백질 기반 중합체 겔은 약물 전달계에서 그 활로를 찾고 있다. 반자연적 겔의 성공적인 사용은 세포 내부에서도 이런 단백질 겔이 훌륭하게 작동하리라는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상전이 가설의 또 다른 매력은 세포 활동이 특별한 무언가에 의해 진행될 필요가 없다는 말에서 드러난다. 세포의 활동은 천국의 원탁회의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발명품에 의해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비생물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다. 생물계와 비생물계가 연속성을 띠고 있다는 말은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보인다. 씨는 살아 있는가?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떤가? 이런 경계의 양편에서 작용하는 동일한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생물계 혹은 비생물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상전이다. 그것은 또 세포가 특별한 기제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한다. 세포는 우리에게 특별한 것임이 틀림없지만 그 작동 기제는 지극히 평범하고 완벽하게 정통적이다. 세포의 다양한 기능이 단일한 한 가지 기제에 입각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삶은 실제로 단순하다. 과학의 궁극적 목적은 어떤 발견에 대해 해석적 복잡성을 더하는 데 있지 않다. 명백히 복잡해 보이는 계층 구조를 파괴하고 단순한 지배 원리를 세우는 데 과학의 목적이 있다. 따라서 최단 경로 해석법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일견 이상하면서도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이름인 활동 전위(Action Potential)는, 일시적으로 세포에 전기적인 충격을 주면 세포가 반응해 작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활동 전위는 분비 작용에서 근육의 수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포 활동을 촉진한다....활동 전위가 세포막 채널의 전류에서 기인한다는 모델을 1950년대 초반에 호치킨과 헉슬리는 정립했다.....세포막 내부에 위치하며, 조밀한 중합체 겔 주형을 구성하고 있는 구조물을 우리는 주변부 세포골격이라고 부른다. 호치킨과 헉슬리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이런 주형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징어 축삭을 ‘눌러 밀어서’ 세포질 성분을 제거한 다음 남아 있는 세포막을 가지고 실험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 남아 있던 것은 세포막과 그에 연결된 세포골격들이었다. 세포막보다 세포골격이 100배나 더 두꺼웠다. 세포막을 관통하는 전류는 양쪽으로 흐른다. 고전적으로 측정된 전류는 따라서 세포골격의 역동성에서 나올 수도 있고 세포막의 역동성에서 나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주변부 세포골격은 주로 교차 연결된 액틴 섬유소와 미세소관으로 구성된다. 신경 세포에서 액틴 섬유소 다발은 특징적인 부위에 분포하며, 망으로 짜이지 않은 미세소관은 세포막 바로 아랫부분을 길게 달리고 있다. 두 가지 단백질은 고농도로 존재하고 또 매우 높은 음의 하전을 갖는다. 따라서 세포골격은 세포질을 둘러싸고 있는, 음의 하전이 다층 구조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부가적인 하전은 세포질 내부에 고루 퍼져 있지만 세포골격은 연속적이다. 세포 내부에 꽂아 넣은 미세전극은 확실히 음의 전위를 기록해야만 한다.....세포골격의 상전이가 활동 전위의 독특한 매개물이라고 다카시와 마쓰모토는 보았다. 마쓰모토는 활동 전위에 수반되는 세포골격 변화의 특이한 사항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세포 주변부 세포골격이 없으면 활동 전위가 사라진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활동 전위와 세포골격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주변부 세포골격의 구조적 전이가 전압의 차이를 일으키고 그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활동 전위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포 간 통신 기제는 아마도 상전이에 의해 조절되는 것처럼 보인다. 분비 작용이나 활동 전위의 생성은, 음으로 하전된 중합체 주형의 역동성에 기인한다. 2가 양이온에 의해 응축된 주형은 1가 양이온에 의해 팽창된다.
살아 있는 세포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있다면 물질을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운반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세포와 세포 가장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런 운반은 원초적이기 때문에 복잡한 기제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제시한 기제는 이 단순성의 법칙에 잘 들어맞는다.
암세포 내부의 물에 관한 이야기는 수십 년 전 활약했던 외과의사인 Raymond Damadian까지 소급된다. 그는 연구를 위해 길버트 링의 실험실에 합류했다. 다마디안은 물의 조직화가 질병의 원인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정상 조직과 병리 조직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 핵자기공명법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또 이 실험은 자기공명이미지(MRI) 조영술이라는 기술적 진보를 이끌었다. 이 기술의 특허권은 다마디안이 가지고 있다. 또한 이 강력한 기술을 사용해서 세포 내부의 물이 조직화되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이끌어 냈다. MRI 기법은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는 것에 이용될 수 있는 놀라운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이 차이는 명백하게 내부의 물에 기초하고 있다. 물 분자 안의 양성자가 이완되는 양상의 차이가 MRI 이미지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암세포에서 물은 덜 조직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는 매우 많다. 이제 이런 차이는 암세포와 정상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상자성(paramagnetic) 이온의 양이 차이가 있다는 추측으로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포가 분열할 때 물의 구조가 변한다는 사실은 실험적으로 확립되었다. 또 이런 차이는 상전이의 결과와 관련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비정상적으로 왕성하게 분열하는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 물의 조직화 정도가 다르다. 따라서 이런 추론은 어떤 물질이 세포 분열을 촉진한다면 그것이 물의 구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쪽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단서는 암세포가 돌연변이에 의해 ‘자신을 드러내는 서명’ 단백질을 발현한다는 점이다. 여러 종류의 암세포에서 이런 서명 단백질은 증식한다. 세포의 입장에서 이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다. 또 이들은 면역계를 회피할 수 있어서 쉽사리 제거할 수도 없다. 이들의 파괴력은 이들 단백질을 목표로 하는 항체를 사용했을 경우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들 단백질을 제거하면 암은 급속히 쇠락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볼 지점은 이들 돌연변이가 물의 조직화 능력을 훼손하느냐는 것이다. 돌연변이 단백질은 아마 정상적인 단백질보다 물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상적인 세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단백질은 물을 조직화하는 능력을 지니고 이를 고유의 특성으로 간직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추론이 가능하다. 동시에 단백질은 탈조직화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단백질은 이 두 가지 경쟁적인 전략의 균형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이들 균형이 깨진다. 서명 단백질은 기능적으로 부적당하고 그 말은 물의 조직화 능력에도 해당된다. 세포 분열 동안 물의 탈조직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세포 분열의 많은 단계가 물의 조직화와 탈조직화 사이의 전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이 구조가 잘 보존되도록 하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전이가 일어나는 것을 억제할 것이고 반대로 물의 무질서도를 증대시키는 요인은 그 반대로 행동할 것이다. 무질서도가 증가한 수용성 환경은 세포 분열을 촉진할 수 있다. 세포는 자신의 복제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다. 따라서 가설은 암세포가 잘 알려지지 않은 病因(etiology)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단계는 환경적이거나 유전적 요인에 의해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돌연변이체가 면역계에 의해 제거되지 않으면 이들은 세포 내부에 축적된다. 이들 단백질은 물의 구조화를 망가뜨리면서 세포 분열을 촉진한다. 딸세포도 돌연변이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도 왕성하게 분열한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신체 내부의 한정된 재화를 바닥나게 한다. 이런 가설에 따르면 항암 치료의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직접 단백질을 공격하는 것이며 이것의 치료 효과는 이미 입증되었다. 다른 하나는 물을 포함하는 것이다. 물의 구조화를 촉진하는 물질은 암세포의 분열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내가 알기로 이런 가설은 한 번도 실험으로 연결된 적이 없다. 또 현재 사용되는 항암제를 이런 기전에 입각해서 그 효과가 검증된 바도 없다.
세포 분열이라는 총체적으로 복잡한 연쇄 과정은 상전이라는 일반적인 기제로 설명이 가능하다. 여기서도 상전이의 증폭이 핵심을 이룬다.
근육은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수축 단위인 筋節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세 종류의 섬유소가 있다. 두껍고 가늘고 그리고 연결하는 섬유소다. 두껍고 가는 섬유소가 근육의 수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연결 섬유소는 마루야마와 왕의 획기적인 발견에 힘입어 최근에야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것은 두꺼운 섬유소를 근절의 끝에 연결하고 근절 분자의 용수철 역할을 한다..... 세 종류 섬유소가 모두 중합체다. 가는 섬유소는 주로 액틴 단위체가 중복되어 있다. 두꺼운 섬유소는 미오신이 중복되어 있고 척추동물의 연결 섬유소는 titin이라고 하는 면역 글로불린 구조가 반복되는 거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근절을 꽉 붙들고 있어서 원심분리로 제거되지 않는 물과 함께 이 중합체 배열은 겔과 같은 격자 모습을 띠고 있다. 이런 겔이 상전이에 의해 수축하느냐 하는 점은 흥미로운 질문이다.
근육 수축의 기본 단위는 근섬유이고 그것은 수백 개의 단백질 섬유로 구성되어 있다. 평행한 많은 근섬유는 세포 혹은 섬유 다발을 구성하고, 그것들이 근육을 이룬다. 따라서 배열은 계층적이다. 평행한 섬유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근섬유의, 결정과 같은 정확성을 지닌 구조를 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이런 배열은 전체 근절에 걸쳐 광범위한 가교로 연결된 결과이며 A-띠와 I-띠로 명명된다..... 섬유소의 가교 연결은 격자가 규칙성을 갖게 한다. 또 이것이 격자가 너무 팽창하지 않도록 제어한다. 근절에서 보이는 중합체가 고도로 하전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자신의 수천 배의 부피에 이르는 물을 함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들이 교차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물은 탈조직화될 것이다. 근절의 교차 연결은 세포 주변부의 세포골격이 그렇듯이 지나친 팽창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근육의 섬유소 격자는 고도로 교차 연결되어 있고 물이 채워진 중합체 겔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놀라울 정도의 규칙성 때문에 이들은 슈퍼 겔(supergel)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슈퍼 겔들은 수축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들 행동의 어떤 특성은 다른 종류의 상전이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상전이 촉진 인자는 일반적인 중합체 겔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세포막이 없는 세포의 수축은 염류의 증가, pH의 변화, 온도의 상승에 의해 시작되고 또 심지어 전류로 분리된 근 섬유의 수축을 촉진할 수 있다. 중합체 겔의 상전이처럼 이들 촉진 인자의 임계점 근처에서 ‘급격한 변화(razor-edge)’가 일어난다. 그러나 어떤 임계점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수축 작용은 규모가 크다.
종합하면 수축하는 기계(근육)의 힘은 그들의 구성 요소인, 세 종류의 섬유소가 모두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두꺼운, 가는 혹은 연결 섬유소 모두 다 그렇다. 모든 섬유소가 짧아진다. 이들 섬유소의 짧아짐은 근절을 짧게 한다..... 각각의 경우 그 기제는 상전이에 의존한다. 단위체의 응축, 나선-코일 전이, 접힘-펼침 전이 등이 그것이다. 가는 섬유소에서 전이는 중복되어 일어나고 매 주기는 섬유소를 일정한 간격으로 진행시킨다. 두꺼운 섬유소와 연결 섬유소에서는 국소적인 짧아짐이 누적되고 그것이 근절의 수축과 연결된다..... 서로를 보충하면서 세 섬유소는 근육 수축에 기여한다....
매우 작은 변화가 거대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상전이는 우리 자연계가 지닌 절제된 우아함이 절절히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상전이를 추동하는 힘은 무엇인가? 세포 활동의 공통적 특징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이다. 분비소체에서 압축된 중합체 용수철이 풀리면서 저장했던 에너지를 내놓는다. 근육의 두꺼운 섬유에서 확장된 알파 나선의 막대기가 녹으면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아무렇게나 꼬인다. 세포질 분열을 하는 동안 수축환(고리)에서는 확장되고 水化된 액틴 섬유가 응축을 통해 저장된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 모든 경우에서 이런 작업은 일을 하기 전 소기관에 저장되었던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든 사용하면서 수행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두 형태를 띤다. 하나는 화학 에너지이고 다른 하나는 질서다. 전자는 익숙한 것이다. 후자는 다소 낯설고 위협적이다. 질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넣어야 하고 그것은 질서가 깨질 때 다시 빠져 나온다..... 질서를 되찾는 과정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세포 내부에서 질서, 무질서에 관여하는 에너지의 양은 상당히 많다. 이러한 효과는 분배되는 분자의 수에 의존하며 물 분자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분자들을 합한 것보다 최소한 무려 10,000배는 더 많다. 따라서 각 분자들이 기여하는 정도의 에너지를 모두 합한 것보다 물의 탈조직화와 관련된(단백질이 무질서화된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겠다) 에너지의 총량이 훨씬 크다. 열역학이 생명보다 앞선 것이기 때문에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생물학에서 핵심적 중요성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저기 산재하는 용질들의 바다에서 세포와 비슷한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조직화의 한 예다. 조직화는 세포 내부의 구조에도 반영되다. 단위체가 중합체가 되고 중합체는 주형 속으로 응축된다. 이런 주형은 세포 소기관으로 조립된다. 각각의 경우 흩어져 있던 요소들이 큰 규모의 조직으로 질서를 얻는다. 사실 구조적 질서는 생명체의 증명서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이 시들고 죽으면 질서도 그렇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명백하다면 이는 어떤 의미가 있음을 암시한다. 살아 있는 상태의 품질보증서로서 질서는 결국 에너지를 어떻게 저장하느냐에 관한 숨겨진 기제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어떤 종류의 세포에너지는 질서의 형태로 저장된다.
어떻게 생명이 시작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소위 말하는 원시세포(protocells) 혹은 원시생명체(protobionts)는 겔과 같은 것이어야만 했다. 주변의 수용액과 확연히 구분되고 그것과 섞이지 않는 水化된 중합체 덩어리와 같았을 것이다..... 원시 생명체는 단순한 중합체 겔이었을 것이다.
세포 내부에서 ATP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진화적 발명품이며 단순한 원시 생명체를 원핵세포로, 궁극적으로 진핵세포로 이끌었다. 결론적으로 원시 생명체의 에너지 공급원은 태양이었다. 처음 태양 에너지는 무생물적인 ATP의 생산을 이끌었고 나중에는 생명체 내부에서 이들 물질의 생산을 도맡았다. ATP에 편입된 에너지는 단백질의 확장과 물의 조직화를 통해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었다. 이런 에너지가 계를 고에너지의 질서 정연한 상태로 안정화시켰다. 문자 그대로 ATP는 생명체를 ‘살아 있게’ 한다.
미토콘드리아의 표면에서 ATP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들은 ATP로 가득 찼고 음성 하전을 띠고 있다. 세포는 마치 하전된 수박을 삼킨 것처럼 미토콘드리아의 높은 표면 하전을 세포 내부의 물을 조직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물의 조직화는 주변의 단백질을 펼쳐진 상태로 유도할 수 있었고 계속적으로 ATP를 만들 연료인 산소가 세포 내부로 확산되어 들어가는 한 미토콘드리아는 지속적인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나리오는 미토콘드리아 내부와 주변의 물이 조직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미토콘드리아 내부의 물이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은 핵자기 공명법에 의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미토콘드리아 바로 바깥쪽은 간혹 큰 공백 지역을 가지는 것이 관측되었으며 이는 그 장소가 용질이 없는 물로 채워져 있다는 의미다. ATP 합성에 의해 끊임없이 충족되는 미토콘드리아의 표면 하전은 그 주변의 물을 조직화하고 이 조직화 된 물은 단백질을 넓게 펼치고 고 에너지 상태로 존재하게 한다. 이것이 조직화를 촉진하고 유지하는 방법이다.
미토콘드리아가 만든 ATP는 세포의 단백질로 이동할 수 있다. 거기에 한번 결합하면 이들은 깨져서 ADP와 무기 인산으로 분해된다. 이들은 다시 미토콘드리아로 돌아와 재사용되어 ATP를 다시 만든다. 이런 순환 기제는 멀리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제를 공고히 했다..... ATP 순환 과정에서 특기할만한 점 하나는 이 순환과 동시에 하전이 교환된다는 점이다. ATP가 결합하면 단백질은 음의 하전을 얻는다. 이 변화는 영원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다시 하전이 떨어져 나가야 한다. 이때 ADP와 무기 인산이 빠져나가면서 단백질은 음의 하전을 잃게 된다. 따라서 단백질이 일을 하는 동안 하전되어 고에너지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방전된 상태로 돌아간다. 이런 하전의 필요성 때문에 ATP 생산을 위해 전자의 전달 과정이 편입된 것은 논리적으로 보인다. 전자는 연쇄적인 사슬을 따라 움직이며 궁극적으로 음으로 하전된 ATP에 편입된다. 이 하전량은 나중에 단백질에 들어간다. 문자 그대로 단백질은 에너지로 ‘充電(charged)’된다. 하전이 끊임없이 흐르면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과정은 건전지와 유사하다. 미토콘드리아 건전지는(물질대사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세포질의 기질들에 하전을 공급하고 그들이 일을 수행하도록 한다. 이 체계는 노트북 컴퓨터나 전선이 없는 드릴처럼 작동한다. 이들은 사용하기 전에 먼저 충전되어야 한다. 공학적으로 구축된 체계나 생물학적 체계는 같은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에너지 가설의 핵심 사항은 세포 활동을 책임지는 에너지는 궁극적으로 하전에서 기원한다는 점이다. 이 하전은 미토콘드리아 표면에 있거나 단백질 표면에 있다. 미토콘드리아 표면의 하전은 주변의 물을 조직화하고 그것이 단백질이 펼쳐진 상태로 존재하게 만든다. 단백질 표면의 하전은 단백질을 펼치고 주변의 물에 질서를 부여한다. 어떤 경우든 단백질-물 주형은 에너지를 얻는다. 이들 에너지가 생명체가 활동하는 데 사용되며 그 에너지는 상전이 과정을 통해서 운반된다. 이 체계는 도미노 배열과 닮아 있다. 처음에 에너지는, 도미노를 손가락으로 튀기기 전 단계에서, 도미노들(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데 사용된다. 떨어지는 도미노들은 업무를 수행하고 이 체계의 무질서도(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단백질의 주요한 기능은 대사 에너지를 물의 조직화로 전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ATP의 결합과 분배가 단백질이 펼쳐진 상태를 유도한다.....ATP는 직접 단백질에 작용한다. 이 물질이 결합하고 가수분해되면서 에너지가 전달된다. 우리는 ATP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기제가 물의 조직화와 단백질의 구조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세포는 무질서한 기계다. 질서를 세우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무질서해지면 에너지를 내놓는다. 이 말은 내부 에너지(enthalpy)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 에너지는 내부 에너지와 무질서도, 두 가지에서 기원한다. 과거에 무질서도라는 개념은 대체로 무시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특히 강조하였다. 세포가 절묘한 상태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이런 특성이 생명 현상에 필수적이다.
- 세포질은 단순한 수용액이 아니다. 세포막이 없더라도 세포질은 중합체성 주형이 서로 붙들
고 엉킨 구조를 유지한다....
- 세포를 겔처럼 취급하는 것이 용질과 물에 관한 새로운 법칙의 근간이다.
세포는 음으로 하전된 상태에 있으며 따라서 그것의 전위는 음의 값을 갖는다.
상전이는 중합체 겔의 놀라운 특성이다. 그들은 용질을 움직이고 상을 분리하며 부피를 변화시킨다. 물론 이온도 움직인다. 세포에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이런 상전이는 환경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pH의 변화, 온도, 압력 혹은 이온의 함량이 조금만 변화해도 상전이가 일어난다. 따라서 겔 작용의 공통분모는 세포 활동의 공통분모 역할을 한다.
물이 강하게 결합해 있기 위해 나무 목질의 관이 내강까지 확대된 섬유성 기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 기질 물질은 매우 친수성이 좋은 점막다당류들이며 목부의 용액을 점성이 매우 좋게 만든다고 한다. 따라서 이 기질은 겔로 변화되면서 목부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 이 물이 기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그 무게는 무시할 수 있다. 이들의 흡착력이 충분한 한에서 매우 긴 관이 물을 달까지 운반할 수도 있다..... 그 흡착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이제 막 자른 나무토막을 태워본 적이 있는가? 시애틀에서 사람들은 음습한 겨울의 습기를 몰아내기 위해 주변에 흔한 나무를 태워 겨울을 난다. 잘 말린 나무는 쉽게 타지만 습한 나무는 칙 소리를 내며 금방 꺼져 버린다. 놀라운 점은, 쪼개진 것일지라도 그 나무를 말리기 위해 한 해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물은 고집스럽게 붙어 있다. 이런 고집스러움은 늙어서 분자구조가 망가진 나무에서는 볼 수 없다. 늙은 나무를 포화되도록 물에 담갔다가 금방 말리면 잘 탄다. 따라서 물의 흡수 능력은 목부 표면의 디자인에 달렸다. 이 흡착력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탈수시킬 수 없을 만큼 충분히 크고 세쿼이아 같은 큰 나무의 꼭대기까지 물을 쉽게 올릴 정도로 강하다.
조직화된 물은 지구물리학의 세계에서도 작동한다. 두 가지 범주를 얘기하자면 지구 자체와 하늘이다. 지각에서도 칼륨/나트륨의 비율은 매우 높다. 반면 해양에서 그 비율은 1:50으로 역전된다. 어떻게 이런 역전이 가능했을까? 지각에서 높은 칼륨/낮은 나트륨 비율은 부분적으로 암석의 염류 비율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물-흡착 특성도 이러 비율에 기여한다. 만약 물이 지구 점토의 친수성 표면에 흡수된다면 이들은 조직화되면서 칼륨을 끌어들이는 대신 나트륨은 배제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혈암에서 표면의 칼륨 대 나트륨의 비율은 3:1에서 4:1 사이다. 여기서 배제된 나트륨은 씻겨 바다로 흘러가 고농도로 축적된다. 지각은 따라서 배제된 나트륨의 바다에 둘러싸인 거대한 세포질이다. 다음에는 하늘을 보자. 하늘은 상승하는 수증기가 모이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런 수증기는 균일하게 퍼지지 않는다. 이들은 부드러운 구름으로 응축되어 건조한 대기의 바다를 떠다닌다. 특정 장소에 국한되어 응축되지만 왜 이들은 균등하게 퍼지지 않을까? 조직화된 물의 개념이 여기서도 유효할 것 같다. 하전된 꽃가루 혹은 먼지는 거대분자들이 통상 그러하듯이 핵으로 작용해 물을 응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핵 하전의 불균등성에 따라 물 표면이 배열된다면 이 배열은 그 자체로 쌍극자로 기능할 수 있다. 쌍극자-쌍극자 간 끌림에 의해 이들은 수증기 구름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구조화된 물이 세포생물학에서 작동하듯, 거대 세계에서도 작동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조직화된 물은 친수성 표면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뭔가 할 것이다. 이런 강력한 힘의 바다는 수심이 매우 깊다.
공학자들은 실리콘에 기초한 통신체계를 만들었던, 컴퓨터 칩을 만들었다. 생물학적 통신을 위해 생명체들은 탄소를 이용한다. 원소들 중에서 실리콘과 가장 밀접한 것이 탄소다. 생물학자들이 자연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더욱 익숙해질수록 공학자들이 응용해야 할 부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출처] 진화하는 물.....제럴드 폴락 지음|작성자 허당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