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 분 책의 일부를 샘플 번역할 일이 생겼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최근 송년회나 레슨, 다른 책 번역으로 아직 다른 챕터들은 손을 못대고 있었죠.
오늘 제가 올린 글(삶에서 배우기)에 이 분의 영상 하나 짧게 올렸는데,
대전에서 "오감 글쓰기" 라는 교육 프로그램 진행하고 계시는 냥냥님께서 검색해보시고는 관련된 영상이 또 있다며 댓글로 이 분의 다른 영상도 알려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보고는 "이건 번역해서 소개해야겠다" 싶은 맘이 들어서, 영상 번역해서 올립니다.
제가 볼 땐 Charlotte selver 이 분의 작업은 F.M 알렉산더의 작업과도 많은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선(zen)과 종교 철학자인 앨런 와츠(Alan watts)와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과도
함께 작업했다고 하더군요. 이 부분도 조만간 짧게 글을 번역해서 올려보겠습니다. :)
경험하기 VS 관찰하기
이건 좀 명료히 짚고 넘어갑시다.
당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일일히 세고 있는 것은 '관찰(observation)이라고 불러요.
그러나 경험하기(experience)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경험은 당신이 계산하지 않아도 그냥 당신에게 일어나요.
당신이 바라보거나 관찰하지 않아도 경험은 그냥 일어나요.
그러니 우리는 관찰하기가 사라진, 막 새로 태어난 듯한, 그런 태도를 허용해야 해요.
왜냐면 유기체(혹은 몸) 전체가 깨어나면, 더 이상 관찰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우리가 평소 관찰할 때보다 훨씬 더 깨어있기 때문이죠.
있죠, 저는 관찰하기라는 게 유기체에 대한 잘못된 방식의 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거라고 봐요.
그리고 우리가 하는 작업(Sensory Awareness)의 이면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있어요.
작은 아이들을 보세요. 그들이 자신의 활동에 온전히 몰입해있을 때,
당신은 아이들이 관찰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고 있음을 깨달을 거에요.
그리고 (사람이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는) 이렇게 경험하는 능력은,
우리가 사용하지 않기는 하지만 굉장한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매사 관찰하라고 훈련받아 왔어요.
학교에서는 모든 교육에서 우리에게 관찰하라고만 가르쳐요.
우리가 관찰하지 않으면 딴생각할까봐 걱정하는거죠. 그렇지 않나요?
관찰하지 않으면 멍해진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여기에 존재하는 순간, (물론, 당신은 여기에 멍하게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 당신이 오롯이 여기에 존재할 때, 거기엔 일어나는 현상들을 인식하는 것 밖에 없고,
또 그것을 방해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리고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런 인식은 감각 신경을 통해 일어나요.
즉, 우리 몸 전체에 계속해서 느끼는 신경들이 넓게 퍼져있고, 이 감각이 우리의 의식으로 전달되요.
그건 머리에서 뭔가를 인식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 전체가 열려있는 것에요.
이렇게 의식적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게 묻지 마세요.
그건 마이어스 박사가 몇년 전 했던 강의를 참고해야 할 거에요. 굉장한 강의였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해요. 느끼려고 애쓰지 마세요. 이건 자신을 잘못 사용하는 거에요.
당신이 머리로 애써 느끼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잘못 사용하는 겁니다. (mis-use).
그래서 '머리를 쓰라'는 말은 누군가 쓸 수 있는 가장 저급한 표현일 거에요.
왜냐면 이건 생각으로, 애쓰는 것으로 이어지고,
이는 경험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최소한 경험의 질을 굉장히 떨어트려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에만 갖혀 있게 되면 대개 진정한 경험이 아니라 불안만 늘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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