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곡 안에는 패턴이 있고, 그 패턴에는 무한의 개념이 있다."
바흐의 988 을 비롯한 모든 변주곡들은 '테마 - 변주 - 코다' 의 기본틀로 이루어져 있다. 간단한 테마를 기본 패턴화하여 복제, 반복, 변화, 확장시켜 무한의 시점에서 통합한 후, 코다로 회기하는 철저한 '패턴화'의 장르다.
변주곡을 작곡하는 순서를 상상해 보자. 우선 변주에 쓰일 테마를 선택할 것이다. 이 때 테마는 반드시 간결한 구조를 이룬 것이어야 하는데 만일 그 질료가 복잡한 것이라면 변주곡을 작곡하는 이유 자체가 무의미하다. 선택된 테마의 멜로디를 들어내고 곡의 근간 즉, 기초 프레임만을 남기고 압축한 후 변주에 쓰일 기본 재료인 패턴을 만든다. 분석과 완성된 패턴을 토대로 거시적인 전체 구조를 계산한다. 예를 들어, 바흐의 골드베르크의 경우엔 기본 패턴으로 쓰인 프랑스 풍 아리아를 구성하는 16 x 2 = 32 마디 구조를 끌어다 펼쳐 전 32 곡 얼개로 사용했다.
틀의 구상을 마치고 변주 모델인 테마의 패턴 작업이 마무리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개별 변주곡들을 만드는 과정으로 돌입할 것이다. 천재적인 영감이 필요한 과정이지만 아울러 기술과 이성과 인내가 필요한 냉철한 두뇌의 빛이 발해야 하는 과정이다. 통상, 변주될 곡들을 나누어 특성에 맡게 그룹화하고, 각 그룹 안에서 각개 곡들에 적용되는 변화와 논리를 부여한다. 다시 골드베르크의 예를 들면, 바흐는 변주 30 곡을 신앙과 음악 도그마의 기초 철학수인 3으로 나눠 10그룹화하였고, 개별 곡들은 테마 아리아의 구조대로 '재현 - 반복'의 대칭 2부로 짠 후, 다양한 리듬을 걸어 곡 마다 마다의 변환을 꾀했다.
모든 예술 작품에서 적용되는 논리지만 과정이 천편일률적이라면 묘미가 있을 수 없으니, 따분하고 장황할 수 있을 변주 과정을 빅뱅시킬 파격이 필요하다. 파격되는 부분은 강렬한 총체성이 드러나는 효력이 담기는 경우가 많은데, 골드베르크에서 그 부분은 3 의 10 배수 곡이자, 10 그룹의 3 번째 곡인 30 변주다. 3 이 10 번 더해지고, 10 이 3 번 곱해진 30 변주의 의미는 완성수인 10 과 삼위일체와 멜로디, 리듬, 화성의 음악수인 3 이 서로 통합되어 완성되었음을 선언하는 상징성을 띄고 있다. 테마 패턴을 묶음된 개별 변주곡들의 연속체로 바꾸고 반복시켜 확장한 후에 조화에 다다랐다면 남은 것은 이 흥분의 발산을 초월의 무한으로 보낼 코다의 정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음악 작품과 마찬가지로 변주곡의 구조와 아름다움을 이해하는데 효과적인 조력을 더하는 도구가 수학이다. 변주곡의 태생과 구조는 수학을 떠나서는 존립 기반을 상실할 만큼 수학 이론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정수론과 집합론, 무한수열, 위상기하, 힐베르트 곡선 등 수학의 굵직한 이론들은 변주곡의 프레임을 설명해 주는 분석틀이다. 여러 이론 가운데, 고등학교 수학 수준에서 다루어진 중요한 문제 세 개를 뽑아서, 이를 통해 변주곡과 수학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이론은 칸토어의 집합론을 설명하는 삼분법 문제, 황금비와 피보니치 수열 문제, 지어핀스키의 개스킷과 코흐의 눈송이 곡선으로 설명되는 무한 프렉탈 문제 등으로 모두가 역사적인 문제들이다.
1. 칸토어의 삼분법
길이가 1 인 선분이 있다. 첫 번째 시행에서 이 선분을 3 등분하고 그 중간 부분을 버린다. 두 번째 시행에서는 첫 번째 시행의 결과로 남은 두 선분을 각각 3 등분하고 그 중간 부분을 버린다.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할 때, 버려진 선분의 길이의 총합과 남겨진 길이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수학사를 빛낸 이 혁명적 문제는 초등 2 학년 수학 과정의 '선분'의 정의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 심오한 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선분은 두 점 사이를 이은 직선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거의 과정이 반복되어도 선분에서 양 끝점은 항상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남은 선분을 계속 제거해 나가는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 남는 것은 수없이 많은 미시적인 작은 점들이고, 남겨진 길이는 0 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제거된 부분들을 모두 더해 보면 계산이 아닌 직관으로도 길이가 1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계산을 해보면, 최초 1/3, 그 다음 2/9, 다음 4/27,... 공비 2/3 인 무한등비급수이므로, 사라진 선분의 길이의 합은 1이 된다. 남겨진 것과 사라진 것을 비교해 보면, 원래 선분의 길이가 전부 사라진 뒤 길이가 0인 점들의 집합만이 남게 된다.
칸토어의 삼분법이 위대한 테제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길이가 모두 없어져 길이를 상실한 집합에 무한 개의 점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혁신적 설명이다. 길이나 연속에 대한 상식을 전복시키는 발상이다. 골드베르크 역시 칸토어의 이론을 따른다. 문제에 주어진 조건(공비 2/3)처럼 기본 패턴을 반복시키며 변주를 지속적으로 변모시키고 흐르다가 최초 원점으로 회기에 멈춘다. 흥미로운 것은 감상자가 시간과 물리적 관점에서 종지된 그 시점을 완전한 종지로 여기지 않고 추상의 시간 속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느끼는데 있다. 선분에서 길이를 제거하면 양 끝 점이 남듯이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연주가 끝나면 기본 패턴은 남는다. 그것이 '아리아'다. 결국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무한대로 남아있는 칸토어의 집합론 같은 것이다.
2.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
1, 1, 2, 3, 5, 8, 13 ....
이처럼 셋째 수열 항부터 선행 두 수의 합이 그 다음 수인 수열을 피보나치 수열이라 부른다. 피아노 건반 구성에 적용되고 있는 이 이론은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로부터 추출된 황금비와 연관된 것이다.
원을 작도하고 정오각형을 그린 후 꼭지점을 이어 대각선을 작도하면 피타고라스 학파의 상징인 별 모양이 생기고, 그 내부에 또 다른 정오각형이 만들어진다. 이런 작도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무수히 많은 별꼴과 정오각형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주목할 것은 피타고라스 오각형의 대각선 길이 사이의 비율이다. 그 비율은 완벽한 비율에 대한 유클리드 비율 이론을 따른다. 황금비(φ)라 부르는 그 비례를 구하는 연산 과정을 살펴보자.
적당한 길이의 한 선분위에 한 점을 잡아 a : b 로 나눈다. 선분 전체의 길이를 a + b, 큰 쪽을 a, 작은 쪽을 b 라고 하면, 이상적인 비율은 다음 비례를 따른다.
(a + b) : a = a : b
알고자 하는 것은 a 와 b 사이의 비율이므로,
a/b = (a + b)/a 의 우변의 분자 분모를 b 로 나눈 후 a/b 를 x 로 놓고 변형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x = (x + 1)/x = 1 + 1/x
이 식을 정리하면, x2 ― x - 1 = 0 - ⓐ
x 를 구하면, x = (root5+1)/2 = 1.6180339...
이 값이 황금비(= φ) 다.
구한 황금비 x (= φ) 에 다른 수를 더한 것과 x 스스로를 거듭 제곱한 경우의 관계를 살펴보자.
ⓐ 식을, x2 = x + 1 로 정리하고, 양변에 x 를 계속 곱해가며, 그 결과로부터 추론되는 관계를 점화식으로 나타내면,
xn+2 = xn + xn+1
따라서, x 의 거듭제곱으로 이루어진 수열은 각 수가 이전 두 수의 합이 되는 덧셈의 수열꼴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즉,
1, x, x2, x3 .... 이는 또한,
1, x, 1+x, 1+2x, 2+3x...,.
이 수열에서 x 를 1 로 놓고 늘어뜨린 것이 피보나치 수열이다. 1, 1, 2, 3, 5, 8, 13
흥미로운 것은 초항을 제외하고 2 항 이후의 인접한 두 항 사이의 비율을 살펴볼 때인데, 2/1, 3/2, 5/3, 8/5,13/8... 즉, 항이 커질수록, 그 비율은 결국 앞서 구한 황금비 x = 1.618... 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황금비와 피보나치는 깊은 연관성이 있다.
변주곡의 시퀀스는 이런 황금비와 피보나치 수열과 긴밀하게 관련되어있다. 대위법의 근간을 밝히고, 조화로운 화성의 이상에 접근한 골드베르크의 시퀀스가 이상적인 조화율을 설명한 황금비와 연관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3. 프랙탈
프랙탈은 패턴이 복제를 통해 무한 반복되면서 확장해가는 모습을 살피는 이론으로, 부분이 전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음 두 가지 예제를 보자.
코흐의 눈송이 곡선 문제 :
1 단계 -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삼각형이 있다.
2 단계 - 1 단계의 정삼각형의 각 변의 중앙에 변의 길이가 1/3 인 정삼각형을 덧붙인다. ....
위 과정을 끝없이 반복했을 때, 변모된 도형의 둘레의 전체 길이와 넓이의 수렴 혹은 발산을 조사해보자.
무한수열의 기계적인 계산 과정을 생략하고 답을 살피면,
직관으로 인지해도 결과는 길이는 무한히 커지며 발산하고, 넓이는 (2root3)/5 에 수렴하는 결과를 취한다.
결과의 해석이 중요한데, 이는 닫힌 공간에서의 길이는 무한대로 커짐에도 넓이는 어느 시점에서 제한된다는 일반 상식을 뒤엎는 결론이다..
지어핀스키의 개스킷 (Sierpinski's Gasket) :
한 변의 길이가 2 인 정삼각형이 있다. 이 때 각 변의 중점을 이어서 만든 정삼각형 모양을 오려내고, 또 다시 나머지 세 개의 정삼각형 모양의 종이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각각의 한가운데 정삼각형 모양을 오려낸다.
이를 무한 시행했을 때 남아 있을 종이의 넓이는?
오려낸 삼각형의 넓이는 공비 3/4, 초항 root3/4 인 무한등비급수로 결과는 root3 이다, 따라서 남아있는 종이의 넓이는, 길이가 2 인 정삼각형의 넓이(root3)에서 제거된 넓이를 뺀 0.
이 결과의 해석은 앞선 칸토어의 삼분법 해석 결론과 유사하다. 넓이는 0 이면서도 그 내부에는 무한개의 크기 0 인 점들이 존재함을 설명해준다.
부분집합으로 전체집합의 성질을 파악할 수 있는 프랙탈 이론은 단순한 테마 패턴이 전곡 틀에 완전히 적용되고 있는 변주곡 양식을 설명해 줌에 효과적인 이론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아리아 구조만을 분석해 보면 전 32 곡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대칭과 율동과 조화는 변주곡의 생명이고 바로 그런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 이런 프랙탈인 것이다.
위 세가지 이론은 음악과 수학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훌륭한 예다. 수학은 단지 계산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례와 조화와 통합의 아름다움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지상 최대의 효율적 사고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변주곡의 작법에 적용된 수학을 통해, 때로는 음악을 바라보는 행위가 복잡한 음악이론에 기대는 행위보다 더 명쾌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프레드릭 제프스키가 칠레 민중 가요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 의 테마를 이용해 작곡한 변주곡 <People United Never Will Be Defeated!,1975> 의 구조를 살펴보면 이의 피할 수 없는 유사점을 발견하게 된다. 곡의 구조만을 분석해 보면,
- 오르테가의 원곡 Vs. 제프스키 변주곡
1. <선창 4 - 중심 24 - 후렴 8 >의 총 36 마디 구조 Vs. 총 36 변주곡.
2. 중심 24 마디 Vs. 각 변주곡은 24 마디 구조.
3. 중심 6 소절 4마디 Vs. 36 곡을 여섯으로 나눈 한 그룹 6 곡 총 6 그룹화.
- 제프스키 변주곡의 세부 구성 해제
1. 1~5 그룹의 경우(변주1~24 변주) 각 그룹의 6 번째 변주곡(변주 6, 12, 18, 24)은 선행 5개 변주곡을 통합한 구조. 예를 들어 6 변주는 1 변주에서 4 마디, 2 변주에서 4 마디, 3 변주에서 4 마디, ... 이런 식으로 선행 변주곡들의 파편들을 조합해 20 마디를 구성하고, 카덴차 4 마디가 붙여진 구조. 참고로 제프스키가 이런 방식으로 각 그룹을 구성한 것은 상징적인 뜻이 숨겨져 있다. 각 그룹의 선행 5 개 변주는 개별 민중을 뜻하는 다섯 손가락을 상징하는데, 1 번~5 번까지의 변주 흐름은 차례로 셈하는 손꼽힘 과정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이는 민중이 하나 둘씩 결집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6 번 변주는 다섯 손가락이 뭉쳐진 상태인 불끈 쥔 주먹의 이미지로, 이는 통합과 일치된 하나된 민중을 상징하는 코드가 된다.
2. 1~5 그룹의 1~5 번째 변주의 24 마디는 12 마디 대칭 구조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는 1 절과 2 절 가사로 구성된 원곡에 따른 것이다.
3. 6 번 그룹(31~36 변주)은 선행 5 개 그룹을 통합 확장한 구성 방식에 따른다. 1 ~ 5 그룹의 6 변주에서 적용된 방식이 6 번 그룹 전체에 적용 된다 : 31 변주는 1 - 7 - 13 - 19 - 25 변주의 4 마디와 코다 4 마디로 이어지는 흐름도를 갖는다. 2 변주는 2, 8, 14, 20, 26,코다, 그리고 33 변주는 3, 9, 15, 21, 27 , 코다... 이런 방식이다.
4. 최종 36 변주는 전곡을 압축한 총체적 성격을 갖는다. 확장된 6 그룹 1~5번째(31~35) 변주에서 순서대로 4 마디씩 추출되어 결합한 뒤, 코다로 원곡 테마가 슬로건처럼 후렴하며 종지.
5. 이 곡의 경우 각 그룹 6 번 변주에 사용된 카덴차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4 마디씩 추출돼 정리된 각 그룹의 성격을 코다로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각 그룹의 선행 5 개 변주들은 순서도의 흐름과 동일하다. 흐름도에는 출력을 결정하는 '예/아니오' 표시의 마름모꼴 판단 기호가 있는데, 1 - 2 - 3 - 4 - 5의 흐름은 '아니오' 판단을 받고 되돌아가, 입력 조건에 따라 수정된 후 출력 조건에 맞을 때까지 회전하는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변화되어 진행되는 그 모습이 곧 변주곡이다. 비로소 6 번째 변주에 이르면 참값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값은 언급한대로 선행 5 개 변주들을 압축 통합한 구조를 띈 값이다. 즉, 이 순서도의 판단 기호에 입력된 참값 결정 조건이란 '일치와 통합'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자연히 그 출력의 순간 곧 '일치된 민중'이라는 상징적 인쇄값은 기쁘고 자유로운 해방의 순간일 것이므로 이런 감동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카덴차 기법은 적격일 수 밖에 없다.
이상의 구성으로부터 제프스키의 곡은 패턴 - 변주 - 확장의 정교한 무한 프랙탈 구조에 근사하고 있다. 6번 변주가 선행 5 개 변주를 복제하고, 6 번 그룹이 선행 5 개 그룹을 복제한다는 점에서 피보나치 수열이 적용되고, 끝없이 확장하면서도 한 곳에 수렴해 가고 있는 특성을 지닌 코흐 프랙탈과 유사하게 변주곡도 확장 구조 속에서도 통합되어 가는 성질을 띄고 있다. '1 - 2 - 3 - 4 - 5 - 큰 하나'로 연속 셈해지는 무한 사이클이 그것을 증명한다. 당연히 모든 변주가 끝나면 감상자의 뇌리 속에 남는 것은 패턴, 즉 4 마디 슬로건만이 남는데, 이것은 선분의 길이가 사라진 뒤 남은 무수한 칸토어의 점들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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