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은 연주의 장소로써, 감상의 장소로써, 녹음의 장소로써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비어낸 공간이든지 혹 만들어진 공간이든지 하나의 건축물은 그 공간 내부에서 반사되는 독자적 소리를 갖고 있으며 그 소리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통해 건물의 예술미를 가치평가할 수도 있다. 건축물의 공간이 만드는 빛의 아름다움처럼 건축물의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의 아름다움도 건축물의 미적 품위를 고양시키며 건물을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만들고 그곳에 머문 사람들의 영육을 편안케 만든다. 건축물의 훌륭한 개성을 드러내는 건축물의 소리적 요소는 건축의 관점에서 음악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도 있게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경우를 예로 보자.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리(도그마)의 부속물로 전례의 분위기를 상승시켜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8선법 체계의 단선율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 운용 방식은 철저한 고저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율은 대게 한 옥타브 내의 제한된 음역 내에서 큰 도약이 없이 부드럽게 순차진행한다. 선율의 동선은 선법을 결정하는 기본음(예를 들면 제 1선법은 레)으로 도입해 상행하여 5도 위의 지속음(1선법의 경우 라)에 머물며 가사의 주음절을 빠르게 낭송한 후 다시 하행하여 처음의 기본음으로 돌아가 종지한다. 대체로 긴 시행을 단 번에 낭송할 수 없기에 문장 구조에 맞게 중간을 잠시 끊어 휴지하는 중간 종지 부분이 있고 세부적으로는 '제시-발전-재현-변주'의 방식에 따라 운용되는 것이 성가 연주 운용의 특성이다. 이렇게 선율을 가사의 주음절이 지속되는 곳인 낭송음(=지속음)을 중심으로 부침시키는 운용 방식은 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는 사실 그레고리오 성가가 불려지던 교회 건축물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초대 로마 교회의 형식이었던 바실리카 양식에서 중세 시대의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교회들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측면 통로를 다수 가질 만큼 대규모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공간이 높고 크며, 소리 반사에 민감한 석재로 만들어진 공간에서는 공명과 메아리 때문에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의 목소리를 멀리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제는 음절이 이전 음절의 메아리에 묻혀 중첩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일상적인 발성법을 포기하고 당시 전례의 언어였던 라틴어의 모음의 고유 리듬에 맞게 절묘하게 메아리를 피하여 전달하는 독특한 낭송의 방식을 개발하게 된다. "낭송하는 어조로 도입하여 목소리를 하강조의 억양으로 낮추고, 높혔다가 다시 낮추어 주음절이 똑똑히 들리게 한 뒤 다음 음절이 변조되어 들리는 동안 사라져 버리게 한" 방식을 통해 메아리에 의한 소리의 중복 현상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주1")
결국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 운용 방식은 거대 교회 건축 구조에서의 사제의 낭송 방식에서 유래되어 발전된 것임이 분명해진다. ; 사제의 특유의 낭송 방법은 오늘날의 미사 전례에서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고 특히 개신교 예배에서 성직자의 설교법은 이런 낭송법이 극단적으로 변형된 경우라고도 볼 수 있다. ; 그러므로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회 전례 공간에서 통용되는 특유의 대화체 낭송 화법을 가리키는 것이지 결코 노래가 아니므로 찬트를 무반주 합창 음악의 장르로 분류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르네상스의 돔 구조가 폴리포니 합창 음악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딕 시대의 성당은 높은 천장 때문에 소리가 멀리 달아나 퍼져나가는 음의 확산 현상이 심해서 이런 공간에서 여러 가닥의 성부가 잘 융합되고 정교하게 어울리는 다성 합창이 발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둥근 돔은 소리를 머물게 하고 모아주게 하여 여러 소리를 자연 화성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안성마춤인 구조체이므로 그 아래에서 여러 독립 성부들을 절묘하게 융화시키는 폴리포니 합창 음악이 가능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르네상스 폴리포니 합창 발전의 절정기를 꽃피우고 동시에 바로크 기악 음악의 태동을 이끌었던 비잔틱 풍 교회당인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은 건축물이 음악의 발전을 직접 유도한 대표적 사례로 불린다. 평면이 그리스 십자형으로 되어 있는 성 마르코 대성당의 상부에는 십자형의 중앙과 사지에 해당되는 부분에 모두 다섯 개의 돔이 건축되어 있다. "이런한 배열은 매우 진귀한 음향 조건을 만들어낸다. 지오바니 가브리엘리는 그러한 조건을 살려 음악을 작곡했다. 성 마르코 성당에는 두 개의 음악 연주용 방이 있는데, 우측과 좌측에 가능한 한 서로 멀리 떨어져 위치하며, 각기 공명체로서 돔을 갖추고 있다. 소나타 피안 데 포르테 라는 곡을 두 악기가 양쪽에서 주고받으며 연주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회중은 두 개의 오케스트라를 들을 뿐 아니라 두 개의 돔을 얹은 공간을 듣는 것이며, 한 쪽이 은색의 음조로 말하면, 다른 한 쪽은 울리는 놋쇠로 대답하는 방식인 것이다."("주2")
교회 건축이 건축의 역사를 이끌었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서 음악은 전례에 돕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교리 전달을 강화시켜주는 반주 없는 합창 음악이 발전했다. 오르간은 공명과 확산적 음향 공간이었던 중세 교회 건축의 직접적 산물로써 높고 거대한 공간에 어울리는 음색을 내도록 마련된 교회의 유일한 악기였다. 그러나 오르간을 제외한 여타의 기악 음악은 교리인 가사의 전달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물론 음향적으로 음조의 변화가 다양하고 명료함이 도드라져야할 기악 음악이 당시의 높고 거대하여 반향 주기가 큰 교회 소리 공간에서 제대로 표현될 리도 없었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종말과 함께 1000년 이상 이어온 교회 건축의 시대는 마감되고 이제 궁정 건축을 축으로 발전한 화려한 바로크 건축물이 음악을 이끌게 된다. 바로크 시대는 궁정 문화와 화려한 귀족 문화가 번성한 시대였고, 이제 음악은 거대한 교회 공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왕과 상류 귀족들을 위한 궁정과 개인의 살내 공간에 어울리도록 만들어지게 되었다. 바로크는 건축에서 음향을 고려하기 시작한 최초의 시대이며 잔향 시간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음악을 위한 공간이 설계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수직과 조화, 직선적이고 정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곡선이 물결치는 벽면의 리듬은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음악을 결집시키기에 충분한 구조였다.
극장 건축이 생겨나고, 오페라가 유행하고, 귀족들의 다양한 기호를 반영한 실내악과 기악 음악이 발전하게 되는 것은 그런 건축 문화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음악 행위가 교회와 같은 높고 거대한 공간에서 실내 크기의 적당한 궁정 건축 공간으로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재료면에서도 목재가 이용되거나 커튼과 같은 장식 재료들이 사용되면서 흡음의 효과가 뚜렷해졌다. 자연스레 적당한 실내 공간에서 소리의 겹침 현상은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고 그렇게 개선된 음향 공간에서 다채롭게 음조를 변화시키고 명징함을 표현할 수 있는 조성 기악 음악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된다. 자연스런 결과이지만 소리의 반향을 이용해 자연스런 소리의 블렌딩을 만드는 합창 음악은 흡음 효과가 훌륭한 바로크 건축 공간에서 효과적인 매력을 발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바로크 시대 이후 무반주 합창 음악의 몰락은 건축사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종교 개혁과 함께 등장한 프로테스탄트 교회당의 건축에도 반영되는데 그 특성은 높은 첨탑의 고딕 양식이 규모면에서 축소되면서 목재로 그 내부를 보강하고 장식하는 바로크적 특성이 가미된 혼합적 속성을 띄었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건축물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전성기를 보냈던 곳인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다. 이 건축물은 세 통로를 가진 기본 구조에 동일 높이의 아치 모양 천장을 가진 고딕풍 교회당이다. 그러나 형식은 비록 고딕 풍이지만 교회당의 석조위에는 넓은 목조 공명판이 붙여져 있었고 측벽의 여러 층에는 도시의 상류 인사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석(loge)이 마련되어 있어 바로크적 특성을 지녔다. 18세기 극장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이런 특별석은 화려한 바로크 풍의 목재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고 커튼이 달려 있어 소리의 반향 주기를 감소시켜 음향 효과를 탁월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라이프치히 시대에 바흐가 더욱 정교해진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던 배경에 그렇게 개선된 음향 조건을 지녔던 성 토마스 교회의 소리 공간이 있다. "이런 새로운 조건은 초기 교회에서 누릴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복잡한 음악을 가능케 했다. 거대한 바실리카식 회당에서는 소멸되었을 많은 대위법적 화음으로 이루어진 바흐의 푸가는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의 순수한 목소리가 최상의 평판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이 성공적으로 연주될 수 있었을 것이다." ("주3")
건축물은 음악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훌륭한 외형을 갖춘 건축물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할 수는 있겠으나 혹여 그 건축물에서 반사되는 소리가 그 외형의 화려함과 어울리지 않거나 못미칠 때 그 건물은 다만 재료의 껍데기만 무성하게 쌓아올려진 죽은 건축물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건축에 흔히 비견되곤 하는 음악 작품이나 음악 행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대로 된 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만들때부터 소리가 무시된 건축물이 인간을 불편하게 하는 것처럼 그저 듣기에 얕은 귀와 감성만을 자극하는 음악도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 이 글은 E.S.라스무센 저 <Experiencing Architecture, 건축예술의 체득, 야정문화사> 10장의 '청각으로 느끼는 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성한 글이다. 인용된 부분은 (주1)-215쪽, (주2)-217쪽, (주3)-220쪽.
중세 고딕식 아미엥 성당. 특별한 낭송법이 개발 될 수 밖에 없다.
르네상스 시대의 돔. 성 베드로 성당. 폴리포니 무반주 합창의 시대
비잔틴식 성 마르코 바실리카 - 다중 합창과 바로크 음악의 효시를 이끌었다.
루터파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당. 현재는 과거에 있었던 특별석이 없다.
1710년경의 토마스 교회당 예배 전경 . 측벽에 특별석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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